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시프 스탈린/생애 (문단 편집) == 장례식 == [[파일:external/media2.wnyc.org/stalin_funeral.jpg|width=560]] [[파일:external/pds22.egloos.com/a0048039_4d968822ad59e.jpg|width=560]] [[파일:external/pds19.egloos.com/a0048039_4d968de25e10d.jpg|width=560]] [[파일:external/seanmunger.files.wordpress.com/zombie-stalin.jpg|width=560]] > "그를 보니 [[5개년 계획]]과 [[대숙청|공포정치]], [[대조국전쟁]] 등 그들의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스탈린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소비에트 국가를 강화하고, 군사력과 산업 생산력을 높이고, 영토를 확장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며 함께 노력한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스탈린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의 지성과 경험을 존경하기도 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때조차 그들을 매혹했다. 그가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동안, 어떤 초인의 능력으로도 그가 다시 일어나 소련의 공적 생활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스탈린의 지도하에 수백만을 [[굴라그]]에 처넣었던 사람들이 의식을 반쯤 잃고 마비된 늙은이를 보면서 벌벌 떨었다. 그가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설사 한순간일지라도, 그가 벌떡 일어나 모두를 파멸시키라고 명령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는 스탈린에게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도자가 숨을 거두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몇몇 사람이 서로의 품에 쓰러졌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슬픔에 정신을 잃고 [[흐루쇼프]]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시종들도 들어와 주검을 보게 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스탈린 사후의 정치를 논의했던 간부회 지도자들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들의 인생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역사에서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 >- 스탈린 강철 권력 1953년 3월 6일 아침, 소련 인민들은 다음 소식을 접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가장 가까운 동료요. 그의 계승자였으며, [[공산당]]과 소련 인민의 현명한 지도자이자 교사로서 우리 곁에 있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의 심장이 박동을 멈추었다!" 그의 죽음이 발표되자 소련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오랜 숭배 의식으로 이미 신격화가 철저히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수많은 인민들이 대성통곡을 했고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였다. 몇 년 간 그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소련 각지에서 그를 숭배하던 국민들이 몰려들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들은 모두 만원이었고, 경찰의 통제가 필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스탈린은 그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레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방부 처리가 된 시신은 유리관 속에 넣어져 [[레닌 영묘]]에 함께 안장될 예정이었다. 독재자가 현직에서 죽으면 대체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파일:external/globetrotterblogdotnet.files.wordpress.com/image69.jpg|width=70%]] 사후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 영묘]]에 합장되었다. 레닌과 같이 스탈린도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방문객이 관람할 수 있었고 당시 영묘 입구에도 레닌과 스탈린의 이름이 동시에 쓰여있었다. 그러다가 후에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1961년에 다시 [[화장(장례)|화장]]되어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파일:5d5e43b785600a246244d236.jpg]] 이마저도 초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으나,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에 들어서면서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가 어느 정도 이루어 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히더 프링글의 저서 <미라>에 따르면 엠바밍을 주도한 이는 세르게이 데보프(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Дебов, 1919~1995)[* 그는 1969년에 사망한 호찌민의 시신도 방부처리했다.]였는데, 그는 곰보 자국까지 없애가며 방부처리를 했다고 한다. 스탈린의 관 옆에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는 휘장이 쳐졌다. 스탈린 동지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특기를 끝까지 발휘했다. 3월 8일 그의 시신을 보려는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서 수백명이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참사는 스탈린의 장례식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소련 체제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한 소련 지도부가 은폐하기로 결정하면서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로버트 서비스는 스탈린이 죽어서까지 죽음을 부르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고 촌평했고 올레크 흘레브뉴크는 이 참사가 외국의 사주로 일어난 것이라는 음모론이 나타난 것을 지적하며 스탈린이 인민들을 잘 교육시켜놨다고 촌평했다. 스탈린의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인민들이 그의 죽음을 정말로 슬퍼했지만 노골적인 증오와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부는 스탈린에 대해 불경한 발언을 한 인민들을 체포하여 처벌했다. 여담으로 스탈린과 바로 같은 날에 소련의 대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스탈린의 죽음에 그대로 묻혀 버렸는데, 스탈린의 죽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조화를 사가는 바람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장례식에는 쓸 수 있는 조화가 단 한개도 없었다는 것. 결국 프로코피예프는 조화 없이 장례식을 치뤘다. 1953년 3월 9일, 스탈린의 장례식이 끝났다. 이제 레닌-스탈린 영묘로 이름을 바꾼 레닌 영묘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은 영원히 잠들었다. 자유 진영의 거두 미국, 영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고위급의 인사로 구성된 조문단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스탈린의 죽음을 알리며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사악한 독재자로도 평가했지만, 그가 농업국가 러시아를 원자력 소련으로 현대화했으며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의 지도자이자, 무엇보다도 [[아돌프 히틀러]]에 맞서 싸운 최고사령관 중 하나였다는 것에 경의를 표했다. 많은 인민들이 흐느껴 울면서 스탈린이 없는 소비에트 연방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소설가 [[https://en.wikipedia.org/wiki/Mikhail_Sholokhov|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는 이렇게 애도하였다. >잘 가시오! 아버지! > >뜻밖에 고아가 되어 버린 슬픔을 지울 수 없나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스탈린의 이름은 차츰 신문에서 사라져갔다. 그의 후계자들도 스탈린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4월 4일, 프라우다지는 의사들의 음모가 전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고 발표하였다.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는 공산당 제 20차 전당 대회에서 스탈린의 잘못을 낱낱이 고발하는 장시간의 연설을 하였다. 1961년 10월의 제 22차 전당대회에서는 더욱 더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흐루쇼프에 이어 연단에 오른 [[https://en.wikipedia.org/wiki/Dora_Lazurkina|도라 라주르키나]]는 꿈에서 레닌의 영혼이 나타나 혼자 쉴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제 레닌 묘에 함께 안치되어 있던 스탈린의 시체는 크렘린의 지하실로 쫓겨났다. 스탈린의 초상화와 기념품들도 차츰 사라졌다. 이렇게 [[독재자]]는 차츰 잊혀져갔다. 스탈린의 통치 기간 소비에트 연방은 나무 쟁기밖에 없는 후진적인 농업 국가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의 초강대국이자 강력한 산업 국가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는 [[아돌프 히틀러]]와 벌인 세기의 대결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스탈린은 너무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 [[러시아 혁명|혁명]], [[대숙청]], [[대조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소련 인민의 1/10이 희생되었다. 스탈린이 이뤄낸 위대한 업적이, 그 과정에서 강요된 희생을 모두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그의 무덤을 두겹, > >세겹으로 둘러싸라! > >그리하여 > >그의 체취마저 새어 나오지 않도록, > >그의 과거가 영원히 잠들도록!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오시프 스탈린, version=133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